김현철(金顯哲, 1888~1968)은 일제강점기 일본 동경에서 전개된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김해이며, 충청남도 서천 출신이다. 그는 유학생 신분으로 국권 회복과 민족의 자결권을 주장하며 일제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헌신하였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대학(明治大學) 법과에서 수학하며 근대적 학문을 익혔다. 당시 동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민족자결주의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으며, 한국인 유학생들은 이를 조국 독립의 기회로 포착하였다. 김현철은 최팔용, 송계백 등과 함께 재일본동경조선청년독립단(在日本東京朝鮮靑年獨立團)을 결성하고 실행위원으로 선출되어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준비하였다.
1919년 2월 8일, 그는 동경 신다마치에 위치한 조선기독교청년회관(YMCA) 강당에서 개최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다. 김현철을 비롯한 청년들은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며 대한 독립을 선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2·8 독립선언은 국내로 전해져 3·1 운동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으며, 한국 독립운동의 동력을 해외에서 국내로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체포된 이후 그는 일본 법정에서 내란죄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9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그는 조국의 독립을 향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이후 귀국하여 민족 교육과 사회 운동 등에 투신하였다. 그의 활동은 지식인 청년들이 조직적으로 일제에 항거한 선구적인 사례로 남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현철은 일제강점기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청년의 기개로 독립의 당위성을 외친 인물로서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