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조선)

김윤식(김允植, 1842년 4월 1일 ~ 1916년 1월 16일)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초기의 정치가이자 군인,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중선(仲善), 호는 관정(觀亭)이다. 그는 1865년, 23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유생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김윤식은 이후 자주 외국과의 외교 문제에 격렬하게 대응하며, 1876년 일본과 체결된 강화도 조약의 비준에 관여하였다. 장관으로서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대일 외교의 중요한 순간들에 개입하였고, 이후 외국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개혁 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정부의 요청으로 농민군에 대항하기 위해 군대를 편성하였고, 이 과정에서 충청도 지역에서 전투를 이끌었다. 이로 인해 그는 한때 정치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조선 정부의 개혁과 현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일본의 통치 하에서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여러 국제 회의에 참가하였다. 그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일본의 지배 아래에서 무력한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김윤식은 1910년 일제의 조선 합병 이후에도 정치적 활동을 계속했으며, 그의 외교 경륜과 군사적 경험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他는 1916년 사망하였고, 그의 생애와 활동은 조선 말기 및 대한제국 시대의 복잡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