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고려, 1369년 ~ 1453년)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관료이자 학자로, 권력과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김씨 집안 출신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 시대의 마지막 왕조인 공양왕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이후 조선 왕조에 중용되었다.
김완은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고, 유교 경전인 '십이지'와 '대학', '중용'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도 높은 과거 시험에서 합격한 후 관직에 진출하였다. 그의 공직 생활은 주로 지방 행정과 관련된 직책을 맡으며, 민생을 안정시키고 질서를 회복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불교와 유교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두 사상의 조화를 이루는데 힘쓴 점이다. 또한 그는 실용적인 정책을 통해 농업 발전과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였으며,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후대에 귀감이 되는 사료를 남겼다.
김완은 조선 왕조가 안정된 후에도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학문적 업적과 정치적 기여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조선 초기의 유교 정치에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김완은 1453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후손들은 여전히 김씨 성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