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굉필(김굉필, 1454년 ~ 1510년)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시인, 문인, 정치가로서 활동한 인물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치운(致雲)이고, 호는 간재(閑齋)이다. 그는 조선 제9대 왕 성종 때에 활동하였으며, 그의 학문적 업적과 문학적 재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굉필은 유교 교육을 받고 세한(洗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의 가르침을 중시하였다. 그의 학문은 도덕과 윤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사회의 정의를 강하게 옹호하는 특징이 있었다. 조선 초기의 문인으로서 그는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기도 했으며, 후에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의 문학작품은 주로 시와 수필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삶, 그리고 도덕적 교훈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김굉필의 시는 화려한 표현보다는 간결하고 진솔한 언어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또한 인재 양성과 학문 전파에 힘썼으며, 왕권과 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논의에서도 활발히 참여하였다. 그의 사상은 후대 유학자들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 중기 유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주로 도덕, 정치, 철학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일부가 전해져 학문적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김굉필은 1510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산은 후세에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