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징(金慶徵, 1604-1650)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여익(汝益), 호는 만취(晩翠)이다. 김상헌의 아들이자 김상용의 조카이다.
1628년(인조 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모셨으며,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돌아왔다.
1645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동지사(冬至使)로 파견되었다. 이때 청나라 황제가 조선의 왕세자를 볼모로 보내라고 요구하자, 김경징은 이를 거절하고 귀국했다.
1650년(효종 1년) 김자점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賜死)되었다. 그러나 1680년(숙종 6년)에 신원되어 관직이 복구되었다.
김경징은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초서(草書)를 잘 썼다고 전해진다. 그의 시문집으로 '만취고(晩翠稿)'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