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33년은 로마 공화정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되는 해이다. 로마의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자영농을 육성하고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유지를 재분배하는 농지법(Lex Sempronia Agraria)을 추진했다. 그러나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투표 당일 티베리우스와 그의 지지자 수백 명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로마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 대신 폭력이 동원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비극으로 남았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오랜 기간 이어진 누만티아 전쟁이 소 스키피오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로마군은 누만티아를 완전히 포위하여 보급을 차단했고,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던 누만티아인들은 자결하거나 항복했다. 이 승리를 통해 로마는 히스파니아 내륙 지배권을 공고히 했으며, 소 스키피오는 '누만티누스'라는 칭호를 얻으며 로마 내에서 최고의 명성을 확립했다.
같은 해 소아시아의 강국이었던 페르가몬 왕국이 로마에 귀속되었다.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는 자식 없이 사망하며 자신의 왕국과 보물을 로마 인민에게 유산으로 남긴다는 유언을 남겼다. 로마는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속주를 설치하여 지중해 동부로 영토를 확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확보된 막대한 자원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개혁 정책 수행을 위한 자금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전한의 무제가 흉노와의 평화 유지 정책을 끝내고 공격적인 대외 정책으로 선회했다. 무제는 마읍 땅에 군사를 매복시켜 흉노의 군신선우를 유인해 섬멸하려는 이른바 '마읍의 변'을 시도했다. 비록 흉노 측이 매복을 눈치채고 퇴각하면서 군사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으나, 이 사건은 한나라와 흉노 사이의 오랜 화친 관계가 파기되고 장기적인 전쟁의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기원전 133년은 동서양 모두에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갈등과 팽창의 시대로 접어든 해였다. 로마에서는 내부적인 분열과 내란의 서막이 올랐으며, 동아시아에서는 한 제국과 북방 유목 민족 사이의 거대한 패권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이는 고대 세계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