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17년

기원전 117년은 전한(前漢)의 전성기와 로마 공화정의 확장기가 맞물린 시기다. 동양에서는 한 무제 유철이 통치하며 영토 확장을 지속하고 있었고, 서양에서는 로마가 지중해 전역으로 영향력을 넓히며 내부적인 정치 체제를 정비하던 때였다. 이 해는 특히 한나라의 대외 원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핵심 인물의 사망과 국가 경제 정책의 변화가 두드러진 시점으로 기록된다.

중국 한나라에서는 전설적인 명장 곽거병(霍去病)이 2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곽거병은 흉노를 정벌하여 하서주랑을 확보하고 한나라의 영토를 서역으로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의 죽음은 한 무제에게 큰 정서적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흉노와의 전쟁 수행 방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무제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능침인 무릉(茂陵) 근처에 곽거병의 묘를 조성하고 흉노를 밟고 있는 말 모양의 석상을 세우게 했다.

내정 면에서 한나라는 대규모 대외 전쟁으로 고갈된 국고를 채우기 위해 경제 통제 정책을 강화했다. 한 무제는 소금과 철의 생산 및 판매를 국가가 독점하는 염철전매제(鹽鐵專賣制)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며 재정 확충을 꾀했다. 이 정책은 상인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 집권적 경제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으나, 민간 경제의 자율성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 한나라는 동방의 고조선과 외교적 갈등이 점차 고조되며 훗날의 무력 충돌을 예고하고 있었다.

서양의 로마 공화정에서는 루키우스 카에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와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에볼라가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국정을 운영했다. 로마는 달마티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아드리아해 연안과 발칸 반도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다. 내부적으로는 법률가인 스카에볼라 등의 활동을 통해 로마법의 체계화가 진전되었으며, 이는 공화정 중기의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 해는 고대 세계의 두 거대 세력인 한나라와 로마가 각각 내부적인 인적 손실과 정책 변화를 겪으며 제국의 기틀을 다지던 과도기적 성격을 띤다. 한나라는 명장의 부재 속에서도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제국을 유지하려 했으며,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공고히 하며 대외적인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흐름은 기원전 2세기 후반의 세계사가 제국주의적 팽창과 그에 따른 내부 구조의 재편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