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09년은 전한(前漢)의 무제가 팽창 정책을 본격화하며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한 시기이다. 특히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며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다. 한 무제는 고조선이 흉노와 결탁하여 한나라를 위협하는 것을 차단하고, 중도에서 교역의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침공을 결정하였다.
한나라는 육군과 수군을 동시에 투입하는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했다. 양복(楊僕)이 이끄는 수군 5만 명은 산둥반도에서 발해를 건너 왕검성으로 향했고, 순체(荀彘)가 이끄는 육군은 요동을 거쳐 고조선 국경을 넘었다. 고조선의 우거왕은 패수(浿水)에서 한나라 군대를 맞아 격렬히 저항했으며, 전쟁 초기 한나라 군대는 지휘관 사이의 불화와 고조선의 강력한 수비로 인해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동방에서의 전쟁과 더불어 한나라는 남쪽으로도 세력을 확장했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는 현재의 중국 윈난성 지역에 위치했던 전국(滇國)을 정복하고 그 자리에 익주군(益州郡)을 설치했다. 이는 한나라의 영토가 서남쪽 이민족 지역까지 깊숙이 침투했음을 의미하며, 이 과정에서 전왕(滇王)은 한나라로부터 금인(金印)을 하사받고 신하의 예를 갖추게 되었다.
서구권인 로마 공화정에서는 북방 민족의 위협이 지속되었다. 로마는 갈리아 지방을 위협하던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족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당해의 집정관이었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Marcus Junius Silanus)는 군대를 이끌고 나르보네시스 갈리아에서 킴브리족과 격돌했으나 대패하였으며, 이는 로마에 군사적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기원전 109년에 시작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은 이듬해인 기원전 108년 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 설치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대 제국들이 주변 세력을 통합하며 영토를 확장하던 팽창의 시대였으며, 특히 한나라의 정벌 활동은 이후 동아시아의 정치적 지형을 수백 년간 규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