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국제군사재판

극동국제군사재판(극동국제군사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일본의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1946년 4월 29일부터 1948년 11월 12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실시된 국제 군사재판이다. 이 재판은 전후 국제사회가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일본 제국의 군 고위층 및 정치 지도자들이 재판의 대상이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미국을 주도한 11개 국가에 의해 구성된 국제 군사법원에서 열렸다. 이들은 일본의 무죄를 주장하는 25명의 피고인을 재판하였다. 주요 피고인에는 도조 히데키(전 일본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 아사카 노부유키(천황의 친척) 등이 포함되었다. 재판에서는 총 55개의 범죄가 기소되었으며, 그 중에는 평화에 대한 범죄, 전쟁 범죄, 인도에 대한 범죄 등이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담배와 전쟁의 잔혹을 다룬 증거들이 제시되었고, 수많은 증인들이 출석하여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전쟁 범죄의 법적 기준을 세우고, 국제 사회에 전범 처벌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최종적으로 25명의 피고 중 18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7명이 사형, 11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명의 피고는 재판 중 사망하였고, 4명은 무죄로 풀려났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일본의 전범 처벌뿐 아니라, 전후 국제 법치주의 및 인권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일본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으며, 일부는 승전국에 의한 역사 왜곡의 도구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역사적 의미와 함께 정치적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