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충은 조선 시대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1778년(정조 2년)에 태어나 1857년(철종 8년)에 사망했다.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숙도(叔度), 호는 면암(俛庵)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힘써 1801년(순조 1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1804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특히 예조참의, 대사간, 이조참판 등 중요 직책을 역임했다.
곽영충은 실학자로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을 추구했다. 그의 저서 『면암집』에는 경제, 군사,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그의 견해가 담겨 있다. 특히 그는 농업 개혁과 상공업 발전에 관심을 가졌으며, 실용적인 정책들을 제안했다.
또한 그는 시문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고문(古文)에 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 작품들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곽영충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사상과 업적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