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륭(高黨隆, 1781년 ~ 185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전주이다. 그는 1801년(신유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1803년(과거 정조 27년) 진사시에 통과하여 과거를 통한 관직의 길에 들어섰다. 고당륭은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특히 외교와 교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조정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임무를 맡아 외국과의 관계 및 통상 문제에 관여하였고, 왕명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유학을 중심으로 하며, 당시의 유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학문적 입장을 확립하였다. 고당륭은 또한 사서와 원문을 깊이 연구하고, 후학에게 강의하며 교육에 힘썼다. 그의 저서와 필기들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의 학문적 유산은 조선 후기 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고당륭은 개인적인 성격이나 인생에 대한 여러 일화들로도 유명하다.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갔다. 그의 사후에는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많은 기념사업이 이루어졌고,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그의 학문과 사상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