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복국인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서진(西秦)의 초대 군주이자 창건자이다. 그는 선비족 걸복부(乞伏部)의 수령으로, 그의 가문은 오늘날의 간쑤성 일대인 롱시(隴西) 지역에서 오랫동안 강력한 세력을 유지해 왔다.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화북을 통일했을 당시 걸복국인은 그 위세에 눌려 전진의 신하로 복속되었으며, 전진 왕조로부터 선우(單于)의 칭호를 부여받고 변방의 수비와 통치를 담당했다.
383년 전진이 동진과의 비수대전에서 참패하며 급격히 쇠퇴하자, 걸복국인은 독립의 기회를 포착했다. 당시 부견은 걸복국인에게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그는 오히려 자신의 숙부인 걸복보기(乞伏步穧)가 일으킨 반란 세력과 합류하여 전진에 등을 돌렸다. 그는 롱시 일대에 흩어져 있던 선비족과 기타 이민족들을 통합하여 강력한 군사 집단을 형성했으며, 전진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기 시작했다.
385년 걸복국인은 대선우(大單于)를 자칭하고 연호를 건의(建義)라 정하며 공식적으로 독립 왕조인 서진의 수립을 선포했다. 그는 용사(勇士)에 도읍을 정하고 관제를 정비하여 국가로서의 형식을 갖추었다. 비록 전진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주변에 후진(後秦) 등 강력한 경쟁 세력이 등장했으나, 걸복국인은 지리적 이점과 기병 중심의 전력을 활용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걸복국인의 통치는 주로 군사적 확장을 통한 기반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주변의 소수 부족들을 차례로 복속시켰으며, 농경과 목축을 병행하는 지역 경제의 특성을 활용해 군량을 확보하고 국력을 키웠다. 또한 한족 출신의 인재들을 일부 등용하여 통치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노력했으며, 이는 후대 왕들이 서진의 전성기를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다.
388년 걸복국인은 재위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아들이었던 걸복치반(乞伏熾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부족의 안정과 국가의 존속을 위해 동생인 걸복건귀(乞伏乾歸)가 왕위를 계승했다. 걸복국인은 짧은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선비족 걸복부의 정치적 결집을 이루어냈으며, 서진이 이후 40여 년간 명맥을 유지하며 화북의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