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굉은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경술(景述), 호는 만회(晩悔)이다. 1567년(명종 22년)에 태어나 1650년(효종 1년)에 사망했다.
그는 1591년(선조 24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활동했으며, 전쟁 후에는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특히 대사간, 대사성, 호조참판 등의 요직을 맡았다.
강굉은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이이(李珥)의 학설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그의 저서로는 『만회집(晩悔集)』이 있다.
그는 또한 시문에도 능했으며, 특히 시에 뛰어났다. 그의 시는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으며,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굉은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관직에 있을 때 부정부패를 강력히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했으며, 이로 인해 여러 차례 정치적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