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은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탈피하여, 타인들이 만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세 가지의 독립적인 에피소드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이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독특한 옴니버스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대안적 가족의 가능성을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 대표적인 수작으로 손꼽힌다.
첫 번째 이야기는 분식집을 운영하며 평온하게 살던 미라(문소리)의 일상에 5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남동생 형철(엄태웅)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형철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상의 여인 무신(고두심)을 아내라며 데려와 미라의 집에 무작정 머물게 된다. 이 기묘한 동거는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형철이 다시 가출한 뒤 남겨진 두 여성이 혈연관계를 넘어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번째 이야기는 엄마와의 불화로 인해 냉소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 선경(공효진)의 서사를 다룬다. 선경은 암 투병 중인 엄마 매자(김혜옥)의 자유분방한 사생활과 그로 인해 파생된 복잡한 인간관계에 진저리를 친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을 겪으며 선경은 엄마가 남긴 흔적들을 마주하게 되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상처와 이해를 통해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 이야기는 연인 관계인 채현(정유미)과 경석(봉태규)의 갈등에 집중한다. 누구에게나 지나치게 친절한 채현의 태도 때문에 경석은 결핍과 소외감을 느끼며 사사건건 충돌한다. 이들의 다툼은 앞선 두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연결 고리가 된다. 채현은 바로 미라와 무신이 함께 키운 아이였으며, 이를 통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인물들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로 묶여 있었음이 밝혀진다.
이 영화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를 돌보는 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제27회 청룡영화상 감독상과 제44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자극적인 설정 대신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묘사와 연기파 배우들의 조화로운 앙상블을 통해 가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