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발타

가이우스 발타(Gaius Vibius Trebonianus Gallus, 206년경 - 253년)는 고대 로마의 황제로, 251년부터 253년까지 재위하였다. 그는 원주율의 대립자 콘클라비우스를 처치한 후 제위에 올랐으며, 주로 카르타고와의 전투에서 군사적 업적을 쌓았다.

발타는 황제가 된 직후 갈리아 지방에서 발생한 독립 세력인 볼로이족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 작전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그가 재위 중에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로마 제국 내의 각종 전염병과 내전이었다. 이 시기의 전염병은 많은 인구를 희생시키고 군사력을 약화시켰다.

그의 치세 동안 발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고, 그로 인해 세금을 인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은 민중의 반발을 샀고, 결국 253년 에큐렐리우스의 반란으로 인해 발타는 암살당하면서 그의 통치는 끝이 났다. 그의 사후, 그의 통치 기간 동안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황제들의 자주 변경으로 이어졌다.

가이우스 발타는 제국의 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의 통치 시기는 로마 제국의 침체기와 맞물려 있으며, 후속 황제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